span>명소소개 정문
앵두고채
근원:본사이트  발포시간:2017-08-10 21:30:33

청나라 시기에 우현에서 정주까지 있는 관도 근처에 위치한 석장장촌(지금의 앵두곡사구)는 토비의 기습을 당한 적이 있어서 마을 안에 있는 양식과 가축등이 빼앗겼다.토비가 다시 기습하기를 방지하기 위해 석장장촌민이 마을 서남쪽에 있는 계곡에서 남면만 계곡 위에 있는 평지와 일체로 이아지고 다른 북,동,서 사면이 다 수십미터의 심구를 둘러싸는 3여묘의 고지를 찿아서 고도형 마을을 세웠다.심구의 저부에서 마을 위쪽으로 도착하러 촌민이 마을 북쪽에 있는 심구 안에서 하부에서 상부로 비탈형 심동을 팠다.굴의 낣이는 1미터가 모자라서 한 사람만 통할 수 있어서 "일부당관,만부막개"라고 말할 수 있다.해방 후에 사회가 안정해서 옛날에 한시기 휘황한 고채가 당시의 용무지지를 잃고 불구에 폐기를 당하고 방치하고 점차 기역에서 사라졌다. 이제 마을의 위쪽이 이미 농지가 되고 깊은 골도 메움을 당한다.사주에 있는 고대한 애두 나무만 여전히 울울창창하고 바람에 따라 흔들고 소리를 내고 사람에게 고채 예전의 휘황을 간절히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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